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 m의 암 마이봉과 667 m의 숫 마이봉 의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또한,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 는 문필봉이라고 불리운다.
-마이산의 사계-
마이산의사계 봄에는 돗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 이라 불리운다 .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은 역시 마이산의 탑군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마치 송곳처럼정교하고 태산처럼 위엄있게 주탑인 천지탑을 장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배열되어 있다. 마이산 남쪽에 위치한 이 탑은 당초 120 여개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80 여기가 남아 있으며 폭풍이 몰아쳐도 흔들리기는하나 무너지지는 않는 신비함을 간직한 탑 이다.
(펜션에서 10km)
펜션서 승용차로 5분거리에 위한 죽도폭포 상류계곡으로 수량이 풍부하고 물고기도 많아서 가족단위의 물놀이장소로 적합하다
덕유산 북쪽에 위치한 무주 리조트는 무주구천동 대자연속에 대단위 레저,스포츠,오락 시설이 총 망라된 4계절 종합 휴양지이다, 특히 스키장은 남부권의 유일한 장소로서 눈밭에서 즐기는 노천온천과 관광 곤도라는 덕유산 설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으며 고사목에 내려앉은 하얗게 핀 설화는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특별히 마이산펜션에서 리조트까지 직통도로가 개설되어 승용차로 30여분이면 닿을수가 있다.
펜션에서12km
진안읍에서 정천을 거쳐 주천을 향하여8km를 가다보면 갈거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운장산 정상으로 통하는 길이 약 7km의 깊은 계곡을 갈거계곡 이라한다. 원시(原始) 수림이 우거지고 계곡을 메우는 옥류수는 참으로 흔히 볼 수 없는 비경이다. 보는 이의 넋을 놓게 만든다. 특히, 가을철계곡을 물들인 황홍색단풍은 가히 황홀한 절경을 이루어 어느 국립공원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풍광이다. '해기소'와 700여 평이나 되는 '마당바위' 그리고 '정밀폭포'의 장관과 함께 여기서 북두봉(1,017m)을 오르면, 노령의 산등이 첩첩이 눈아래 펼쳐 지는데, 정상부근에 있는 6.25 동란 전까지만 해도 화전민이 살았던 운장산 농장 수만평의 갈대 밭과 더불어 한폭의 그림같은 경관을 이루고 있다.
구봉산의 정상인 장군봉(1002m)에 오르면 사방팔방 호남의 이름있는 산을 모두 관망 할 수 있는 특이한 산이다. 운장산에서 북동쪽으로 6km, 산의 이름 그대로 바위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기이한산 모습, 보기 드문 명산임을 짐작하게 된다. 북쪽으로 운일암.반일암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명도봉과 명덕봉, 그리고 대둔산까지 분명히 보이고 서쪽으로는 궁(弓)자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복두봉, 운장산이 한눈에 들어오며 남쪽으로는 옥녀봉, 부귀산, 만덕산이 조감된다. 더욱이, 남동쪽으로는 덕유산과 지리산의 웅장한 자태가 아름아름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펜션에서4km)
죽도, 결국은 섬이었구나 진안에서 무주를 향해 약 8km를 달리면 상전면 수동리 내동마을이 죽도에 이른다. 꺾아 세운 듯한 바위산 절벽을 맑디 맑은 물이 한바퀴 휘돌아 흐르고 있기에 마치 섬과 같았던 곳. 남쪽의 장수에서 흘러오는 연평천과 동쪽 무주 덕유산에서 시작되는 구량천이 파자형(巴字形)으로 굽이굽이 굽이쳐 합류하면서 이룬 장관이다. 산죽(山竹)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죽도..그러나 이름처럼 섬이되고마는, 또 하나의 전설이 현실로 맞춰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북의 지붕 노령의 조망대 운장산은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다. 진안 고원의 서북방에 자리하고 있는 산 으로써 정천, 부귀, 주천 그리고 완주군의 동상면에 걸쳐있는 1,126m의 높이와 분지를 가지고 있는 호남의 노령 제 1봉이다. 동쪽으로 연(連)하여 구봉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구봉산과 더불어 기봉명산(奇峰名山)으로서의 이름을 높이고 있는 산이다.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있는 '칠성대'를 지나면 '오성대'가 있는데, 조선 중종때의 서출(庶出)인 성리학자 송익필이 은거 하던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문하에 김장생, 김집 등 많은 학자를 배출한 송익필의 자(字)가 운장(雲長) 이었기에 이 산의 명칭을 그때부터 운장산이라 불러왔다 한다.
(펜션에서15km)
기암절벽에 옥수청산(玉水靑山) 천지산수사 신묘한 어우러짐으로 절경을 빚어낸 곳이 바로 운일암·반일암이다. 진안읍에서 북쪽으로 정천을거쳐 24km를 달리면 주천면에 이르고, 운장산쪽 주자천 상류를 2km쯤 더올라가면 운일암.반일암의 장관이 시작된다. 운장산 동북쪽 명덕봉(845.5m)과 명도봉(863m)사이의 약 5km에 이르는 주자천계곡을 운일암·반일암이라 하는데, 70여년 전만해도 깎아지른 절벽에 길이 없어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뿐이었다 한다. 그래서 운일암이라했고, 또한 깊은계곡이라 햇빛을 하루에 반나절 밖에 볼 수없어 반일암이라 불리워졌다 한다.
남부 마이산 입구에서 천지탑까지 이어지는 벛꽃터널은 전국에서 가장 늧게피워 4월 말쯤에 절정을 이룬다.특히 올해에는 4/12~4/18일 까지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개최되는데 마이산 탑사까지 이어지는 10리벛꽃터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몽금척무(金尺舞)는 궁중정재(대궐잔치의 歌舞)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임금(태조)이 등극하기 이전에 꿈에 신인(神人)이 "금으로 된자" (金尺)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가지고 나라를 바로잡을 사람은 경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정도전이 태조2년(1393) 7월에 몽금척무의 가사와 악보를 지어 올리므로 이후 국가의례의 3대주악으로 제정되어 조선왕조 500년간 나라의 경사 때마다 시행되어 온 것이다. 궁중정재인 이 몽금척무가 鎭安지방에서 재현 공연되어 오는 까닭은 '조선환여승람' 등의 기록에 태조가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은 장소가 진안마이산 이었다는데서 유래한다. 기록에 의하면 운봉에서 왜구를 소탕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이산에 들른 이태조는 산의 모양이 꿈 속에서 본 금척과 너무도 흡사하여, 이에 그 산이름을 고쳐 이르기를 속금산(束金山)이라 명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유래하여 마이산이 소재한 진안지방에서 몽금척무를 발굴 복원하게 된 것 이다